1980년대 일본은 폭등하는 GDP와 경제 호황으로 미국까지 추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금도 일본 기성세대들은 1980년대를 생각하며 참 꿈같고 대단한 날들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80년대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유행처럼 번졌고, 실제로 기업들은 세계적인 명화들을 거액에 사들였습니다. 다른 국가의 부동산도 대량으로 매입하였으며, 그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뉴욕의 중심가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를 인수한 것이었습니다.
88년 일본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개 기업 가운데 33개가 일본 기업이었으며, 그중 1위였던 NTT(현재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의 시가총액은 2위였던 IBM의 3배가 넘었습니다. 이때 당시 한국 GDP가 2023억 달러로 NTT 시가 총액의 70% 수준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대호황의 시작
일본 대호황의 시작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은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 침제기를 맞이했지만 혼다, 캐논, 소니, 파나소닉, 토요타 같은 일본의 전자, 기계 기업들이 계속해서 쌓아올린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을 장악해 갔습니다. 일본의 유명 자동차 회사 혼다, 토요타는 오일쇼크의 분위기를 이용해서 기존 미국 자동차보다 기름을 덜먹는다는 점을 홍보하였고, 잔고장도 적었기 때문에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였고, 이 시기에 사람들은 언젠가 소니가 인텔이나 IBM을 인수해 버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1980년대 오일쇼크 여파가 점점 낮아지고 수출이 매년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상승하였습니다. 1983년 기점으로 자산 시장이 급속도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앞으로도 화창한 날들과 꿈같은 일들이 지속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일본 버블경제의 시작
1985년 일본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 역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6년에는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수출 악화로 인한 경기둔화에 일본 정부는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라는 정책을 펼쳤는데 그 결정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과 주식가격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일본의 부동산 시장은 견고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격은 계속 상승했으며, 기업들과 사람들이 재테크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계속된 투기 열풍이 있었고, 기업과 중장년층들은 광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쏟아졌고, 신고가를 이어나가던 부동산과 주가는 계속해서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집값이 너무 비싸져 대도시의 실수요자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고 근교 지역으로 계속 밀려나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
1989년 일본 정부는 소비세 신설과 금리 인상이라는 악수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그대로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불안한 해외 투자자들은 빠져나갔고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를 낼 수 없었던 투자자들이 무너졌으며, 은행은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었고, 수많은 은행이 파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도산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소비 심리는 위축되었습니다. 일본 경제에 끼어있던 거품이 한순간에 터져버렸습니다.
1992년 이후 결정적으로 생산 가능 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해 거품 붕괴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에코 베이비붐(1971~1974년생) 세대가 취업을 준비할 때라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했는데,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스펙이 좋아도 취업은 어려웠습니다. 이 세대에서는 상당수가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본 경제에 휴유증과 사회문제를 남겨주었습니다.
- 버블경제 시기 면접만 보러 가도 5만엔(우리 돈 55만 원)에 면접비를 지급했고 채용된 후 해외여행을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당시 일본 해외여행자 1000만 명 시대)
- 당시 택시 기사들은 3~5만엔 이상 안 보여주면 무시하고 갔을 정도
- 버블경제 시기 부동산 재벌 8000억 엔(한화 9조 원) 자산가였던 고지마 노부타카는 일본 최고의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 당시 노무라 증권에서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날아가 버린 자산 자치는 1500조엔(1경 5000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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