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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경제 지식

IMF : 국가 부도의 날, 외환 위기가 터진 이유

by 방구석 숑숑이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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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IMF 외환 위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7년 11월 해외에서는 "모든 투자자들은 한국을 떠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한창 잘나가던 대한민국을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IMF 외환 위기가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수많은 경제적 위기를 겪어 왔지만 1997년 IMF 사태는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위기였습니다. 

IMF-국가-부도의-날-외환-위기가-터진-이유

IMF 외환 위기의 시작

전두환 정권 말기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최대의 호황기를 들을 정도로 상황이 좋았습니다. 이때 당시 옆 나라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일본을 곧 넘어설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호황기를 맞는 상황에서 점차 하락세를 탔습니다. 이때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동력인 수출이 점점 줄어들더니 여기저기서 위험한 상황들이 나왔습니다. 외환위기 발생 3개월 전에 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 금액이 6천480억에 달했습니다. 

 

방송매체들과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제 위기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가 아니고 내년에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1997년 12월 800~900원대를 유지하던 원 달러 환율은 2배가 넘는 1,900원대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미 외환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으나 늦은 상태였고 그날 이후부터 뉴스에서는 자금난에 도산하는 기업들을 방송했습니다. 그때 당시 굵직한 기업으로는 한보 철강(한보 그룹), 삼미, 삼립식품, 한신공영, 기아그룹 등이 있었습니다.

 

 

국가 부도의 날

 

"통화 기금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상 국가 부도를 인정하고 국제기관의 품 안에서 희생을 도모해야 하는 뼈아픈 처지가 된 것입니다."

 

MBC 뉴스데스크 이인용 앵커의 오프닝 멘트가 나왔습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기업들의 도산은 사람들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97년 12월, IMF 사태가 시작되기 전 국내 실업률은 3.1%였으나, 98년 1월이 되자 1.4%나 폭등했으며, 3천300개의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그해 2월에는 실업률이 8.7%까지 폭등하여 직장을 잃고 생활고를 겪는 가정이 늘어났고 가장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뉴스가 계속 나왔습니다. 저도 IMF를 겪을 세대로서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IMF 사태는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

이 당시 한국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수출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환율을 높게 책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상 정부는 이전과는 반대로 환율을 하락시켜버렸는데 그 이유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OECD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을 1만 달러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원화 가치의 고평가를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하여 다량의 외화를 시중에 방출했습니다. 그 결과 1997년 10월 외환보유고는 305억 달러였으나 12월에 들어와서는 204억 달러로 약 1백억 달러가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외환위기의 징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 은행들이 채권을 회수하자 다른 나라들도 채권 회수에 열을 올려 달러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당시 정부는 OECD에 가입하여 국가 위신을 올리겠다는 이유로 IMF 사태에 진입시키는데 일조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문제는 은행에 있었는데 외환을 비상식적으로 운영했습니다. 보통에 중앙은행들은 갑작스러운 대외결제의 증가에 대비해서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한국은행은 보유 외환을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지 않았고 그걸 시중은행에 예치하지 않았습니다. 시중은행도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운용하지 않아 한국은행이 보유 회환을 제대로 사용될 수 없었고, 신용공급이 중단되자 갑작스러운 외환 부족에 대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IMF-사태-발생-미국연방준비위원회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한국 정부가 외환보유고로 돈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준비 위원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해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에 의해 성장하였는데 위기가 닥쳐도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거 생각했습니다. 정부만 믿고 투자를 감행했는데, 금리는 싸지만 리스크가 큰 단기외채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97년까지 단기 채무는 계속 증가했지만 기업들은 계속 투자만 했습니다. 어떤 기업은 부채비율이 700%가 넘었고 지금의 삼성그룹, 현대그룹도 부채율이 200%가 넘었습니다. 기업들은 무조건 돈을 빌려 투자했고 수익률은 줄어들어 돈을 갚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인해  임직원들이나 사원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내수 소비가 줄어들게 되면서 기업들도 함께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IMF가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못 알고 있는 분들은 "국민들이 과소비를 많이 해서 IMF 사태가 일어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IMF 사태는 당시 정부의 시장 개방에 따른 대응 실패와 재벌들의 정경유착,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투기 자본의 자본 유동 등이 주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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